섹션소개

남도영화제 시즌1 순천 2023.10.11 ~ 10.16

격식을 갖춘 서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겠지만, 여기선 개인적인 물음으로 시작해보자. 올해 출범하는 남도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아론 카츠의 초기작들을 떠올린 것은 왜일까? 아마 순천이라는 지역이 남도영화제 첫 시즌의 주요 무대이기 때문이었을 터다. 지금까지 순천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영화가 촬영되었지만 종종 거기서 순천은 이름 없는 배경으로 남아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순천에서 촬영된 조문진의 〈황홀〉(1974)에서건 송광사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2022)에서건, 아니면 순천드라마촬영장에서 찍은 영화들에서건, 순천은 그저 익명의 배경이거나 보이지 않는 장소이며 우리는 거기서 어떤 삶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연상이 나를 이끌었는지 이제 더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어느 순간 포틀랜드 출신의 미국 독립영화 감독 아론 카츠의 불평이 떠올랐던 것 같다. (구스 반 산트를 제외하고는) 포틀랜드에서 영화를 찍는 이들은 이곳을 가능한 익명적으로 처리하려 들며 그래서 화면에 나타난 포틀랜드를 보면 초현실적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떠오른 ‘멈블코어(mumblecore)’ 영화의 기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츠는, 이 흐름을 특징짓는 미세하고 불확정적인 대화와 몸짓의 연출에 장기를 보인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포틀랜드에서 촬영된 〈콜드 웨더〉(2010)에서 멈블코어의 스타일과 추리물 장르의 요소들을 탁월하게 결합하는 한편, 포틀랜드의 풍경과 일상적 삶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내게 이 영화는 이상적인 ‘로컬 시네마’의 한 모델로 기억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국내에 수입, 소개된 〈랜드 호!〉(2014)와 〈제미니〉(2017) 이전에 카츠가 독립영화 작가로서 만든 세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역시 포틀랜드에서 촬영된 그의 데뷔작 〈댄스 파티, USA〉(2007)와 뉴욕 브루클린을 무대로 한 〈조용한 도시〉(2007)는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털어놓는 것, 낯선 이를 집으로 들이거나 반대로 낯선 이의 집에서 머무는 것, 사라진 친구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 등 사소해 보이는 작은 모험들을 연료로 삼아 빛나는 카츠의 세계를 둘러볼 기회가 될 것이다.

유운성 프로그램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