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소개

남도영화제 시즌1 순천 2023.10.11 ~ 10.16

낭트! 자크 드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낭트에 대한 언급이 부쩍 잦아졌다. 드미와 낭트를 주제로 한 글을 여럿 찾을 수 있는가 하면, 드미와 낭트의 영화를 한데 묶은 홈비디오 세트도 나왔다. 새삼스럽게 드미에게 낭트는 어떤 존재였을까, 질문하게 된다. 낭트는 드미가 태어난 곳도 아니고, 세상을 떠날 때 머물던 곳도 아니다. 게다가 이번 특별전에 상영되는 작품들이 전부 낭트에서 찍힌 것도 아니다. 당연하다, 〈쉘부르의 우산〉(1964)과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은 제목에서부터 쉘부르와 로슈포르를 배경으로 함을 밝히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낭트와 드미인가. 드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녜스 바르다가 연출한 〈낭트의 자코〉(1991)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바르다가 〈낭트의 자코〉를 만들던 중, 드미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바르다가 연출한 〈자크 드미의 세계〉(1995)와 〈낭트의 자코〉는 드미의 영화에 관한 영화이면서도 다르다. 전자가 다큐멘터리라면 후자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결합된 형식을 취한다. 후자는 ‘어린 드미와, 그와 영화의 만남, 낭트라는 도시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그리고 서둘러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젊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 기억들이 낭트와 드미 영화의 관계를 잇는다. 세상이 세계대전으로 요란할 때, 해안의 도시에서 소년 드미가 발견한 것은 영화와 예술, 인간과 사랑이었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작품과 낭트의 관계를 거론할 때, 먼저 연상되는 것은 항구 도시라는 공통점이다. 맞는 말이다. 쉘부르와 로슈포르는 따로 말할 것도 없으며, 이번 특별전에서 빠진 〈천사들의 해안〉(1963)은 모나코에서 찍었다. 그들 도시는 낭트와 기차로 연결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드미가 미국 L.A. 등지에서 작업한 〈모델 샵〉(1969)은 해안가의 외딴집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런데 항구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낭크와 드미의 대표작을 다 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낭트에서 찍은 데뷔작 〈롤라〉(1961)와 이후 작품들의 연결점은 또 어떤가. 〈롤라〉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아누크 에메는, 〈모델 샵〉에서 남편과 이혼한 롤라로 다시 등장한다. 〈롤라〉에서 롤랑 카사르를 연기한 마크 미셸 또한 〈쉘부르의 우산〉에 재등장해 실패한 사랑을 들려준다. 그러나 인물 몇으로 낭트와 드미를 다 연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제, 드디어 낭트의 기억을 끌고 와야 한다. 드미의 전문가들은 낭트가 드미 영화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라고 평가한다. 세상에 눈뜬 10대의 드미가 낭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미래에 만들 영화의 밑바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떻게 드미 영화에 드러나는지 보여준 작품이 〈낭트의 자코〉다. 영화에 자리 잡은 기억이 일일이 소개되는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들 외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까지 하나씩 연결 지어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런 낭트이기에, 드미는 데뷔 이후에도 낭트 근처 섬에 공간을 마련해 때때로 창작과 휴식의 터로 삼았다.

끝으로 드미가 낭트에서 찍은 두 영화를 이야기할 때다. 우연인지 두 영화는 드미 영화의 상반된 세계를 대변한다. 〈롤라〉가 빛의 영화라면, 〈도심 속의 방〉(1982)은 어둠의 영화다. 흑백으로 찍은 〈롤라〉의 공간들이 창밖의 빛을 빨아들이는 것과 비교해, 〈도심 속의 방〉의 주요 공간은 인물을 가두는 듯한 벽과 벽으로 채워져 있다. 두 영화에서 드미는 낭트의 대표적 관광지인 ‘파사쥬 포므레’를 주제처럼 끌어들인다. 쇼핑 아케이드로 지어진 까닭에 하부는 빛을 차단하는 쇼핑몰의 벽으로 기능하고, 반대로 유리로 덮인 천장은 빛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 영화에서 롤라와 에디트(도미니크 산다)가 아케이드의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롤라가 어릴 적 친구와 재회한다면, 에디트는 죽은 남편의 육체로부터 도망친다. 첫사랑을 간직하고 이루는 롤라와 달리, 에디트는 스스로 결정했던 결혼을 부정한다. 무엇이 드미 영화의 정수일까. 파사쥬 포므레가 지시하는 명암의 주제처럼, 드미 영화에는 만나고 헤어지고, 도착하고 떠나는 인물로 가득하다. 그것은 항구 도시의 특성이자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로슈포르의 숙녀들〉에서 쌍둥이 자매가 축제에서 부르는 노래를 기억해 보자. “여름이 가면 가을이 찾아오죠. 추위가 이어지면 여름을 그리워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뿐. 웃음을 사랑하고 눈물을 사랑해요. 낮을 사랑하고 밤을 사랑해요.” 삶의 양면을 꿰뚫었던 드미는 자기 영화의 세계 안에서 양쪽을 오가며 공기를 전달한 감독이다. 그 와중에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만큼은 사랑이라는 세례를 흠뻑 받아들이길 원했던 것 같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어두운 〈도심 속의 방〉에서조차 두 남녀는 불멸의 사랑으로 죽음 앞에서 연결되지 않았던가.

이용철 평론가